향나무집 입소자 가족 중의 한 사람인 ‘홍’입니다. 저는 지난 3년간 집중적으로 힘겨움을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항상 술에 쪄든 아내의 모습을 보며 정말 천국과 지옥을 오락가락하며 살았습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늘 정신없이 축 쳐져 널브러져 있는 그 사람, 정말 보기 싫었습니다. 저건 죽지도 않는구나! 정말 죽이고 싶었습니다. 혹시라도 퇴근했을 때 아내가 그렇게나마 집에 있는 날이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습니다. 그것도 잠시 언제 나갔는지 밤새 찾아 다녀야 했습니다. 찾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또 밤을 새우며 걱정에 졸다가 아침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또 다시 시작된 하루 “오늘은 어제와 달랐으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어제와 똑같이 반복되는 날일 뿐 오늘도 희망은 없었고, 또 다시 어제와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음에 좌절되었습니다.

많은 중독자가족들이 겪어보았듯이 “어떻게든 내가 끌어안고, 참아내고 그러다 보면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감추고, 때로는 윽박지르며 여러 가지 협박을 해보았으나, 그런 기대감을 여지없이 항상 깨뜨리며 우리 모두를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다잡아서 입원을 시켜보지만 그것이 또한 능사가 아니었습니다. 입원을 하여서 약물로 몸을 추스르게 되면 곧 지극히 정상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 멀쩡한 사람을 입원시켜 놓은 것이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본인도 잘할 거라고 말하고, 어린자식들이 걱정된다고 말하고, 실제로 병원비도 걱정이 되기도 하고, 가지가지 핑계로 퇴원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서 결국 또 퇴원을 하게 됩니다.

퇴원하고 며칠을 잘 견디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놓을라치면 여지없이 ‘또’ 그 자리로 돌아갑니다. 어떤 때는 나오면서 바로 다시 술을 먹고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또 다시 싸움으로 시작되어 몇 달을 또 찌들어 삽니다. 또다시 고민은 시작되고 간수치가 올라갈 대로 올라가고 몸이 정말 견딜 수 없게 되어서 스스로가 술을 목구멍으로 삼키지도 못할 정도가 되면 또 입원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반복이 3년이 되어갑니다.

정말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아니 사실 죽이고 싶을 때 많았습니다. 뉴스를 보면 물에 빠져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싸움에 휘말려 죽고, 강도당해 죽고, 차사고로 죽고 그러한 뉴스를 볼 때 마다 저게 그였으면, 저게 차라리 ‘나였으면’ 할 때가 참 많았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반복 중, 카프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당시 본인 스스로가 ‘향나무집’입소를 결정하고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입소시키고 돌아오는 날, 정말 이번에는 잘 치료가 되고 별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을 하였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기분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단주 100일이 다가올 무렵 청천병력과도 같이 다시 재발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나는 또 다시 깊은 좌절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정말 100일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견디기 힘든 시간이며 참으로 긴 시간이라는 사실을 처음 느꼈습니다. 지난 3년을 돌아보니, 병원에 입원했었건 집에 있었건 ‘100일’이라는 시간을 술을 먹지 않고 넘겨본 적이 없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아이들과 나는, 옛날처럼 술 먹는 그 사람의 모습을 옆에 두고 지켜볼 자신이 없었던 차에, 아내 스스로도 다시 해보겠다는 마음을 강하게 나타내주었습니다. 스스로의 결정에 힘입어 다시 입소를 하게 되었고 지난 11월 말경에 드디어 단주 100일을 처음으로 맞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 사람에게 잘했다고 대단하다고 멋지다고 그리고 잘 견뎌낸 것에 대해 칭찬의 말로 격려하고 싶습니다. 또 좋은 날, 행복한 날이 분명히 올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향집 재입소 이후-부터 치료에 관한 다른 각도의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나 기관에서 지낼 때는 분명히 괜찮은데, 왜! 그 곳에서 나오기만 하면 재발을 하는가? ‘무엇이 문제일까?’, 혹시 그만의 술 문제가 아니라 다른 어떠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향나무집’에서 졸업식과 가족교육이 있던 날, 향집에서 당직으로 수고하시는 김명진 선생님과 대화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분과의 대화중에 ‘알아넌’이라는 ‘중독자 가족들의 모임’에 관해 듣게 되었고, 나가보면 좋을 거라는 권유를 받게 되었습니다.
 
 몇 개월 빠지지 않고 꾸준히 참석하다보면 분명히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꺼고, 알게 될꺼라고... 그 이후 힘겹게 시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알아넌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중독과 관련한 책도 많이 읽어보기 시작했고, 알아넌 멤버들과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대화라기보다는 거기 참석하여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어디에서도 말할 수 없었던 나의 엄청난 고민들을 ‘기꺼이 들어주는 이들’이 있는 그 곳에서 말입니다. 그렇게 그 모임에 참석해서 누구에게도 해보지 못한 이야기들을 말하면서 마음이 가벼워졌고, 그 모임에서 나 자신을 찾게 되고 보게 되자 희망도 가져보기 시작했습니다. 저 알코올 중독이라는 ‘지독한 병’도 나을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기기 시작하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중독자의 가족들 특히 나 자신도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를 참석하는데, 시간을 내는 것도 문제이지만 한 주간을 지나다 보면 참 귀찮게 느껴집니다. “꼭 가야하나? 뭐하러가지?” 하는 생각도 들고, 요즘같이 추워지기 시작하니 게을러지기도 하고요. 술 먹는 사람이 술을 끊으면 다 해결되는 것이지 꼭 나까지 이래야하나? 저 사람의 문제이지 그게 어떻게 내 문제야? 하는 마음도 들고, 그래서 참석하지 않으려고 여러 핑계를 만들고 있는 나를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밝고 따스한 햇볕 아래 온 가족이 즐겁게 뛰놀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지난 3년간 술 문제 때문에 우울해 있었기에 따스한 햇볕을 편안한 마음으로 느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모임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힘겹게 참석한 날 나의 마음이 풀어지고 다시 희망을 가지게 하는 일이 항상 그 모임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조금씩 조금씩.

아내가 치료되는 것 정말 중요합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고요. 그런데 그 사람이 가정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전 날에 그와 함께 했던 가족들이 옛날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여지없이 재발을 앞당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치료받으며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바라보고 있다면, 가족인 그를 사랑하는 저도 그가 말하는 희망을 같이 말해야 하고, 그가 바라보는 희망을 같이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또 그가 변하는 만큼 나도 변해있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중독자 본인의 문제 외에 가족인 나에게도 문제가 있었고 그 문제를 찾아 치료받고 해결해야 할 중요한 부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아내도 더 열심히 단주할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치료에 전념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바라보던 희망이 더 이상 희망만이 아닌 현실일 것임을 또한 확신합니다.

치료를 마치고 강건케 되어 돌아 왔을 때 그가 편안히 있을 곳, 행복이 있는 곳, 바로 ‘그 곳’이 되기 위해 저는 더욱 힘쓸 것입니다. 열심히 수고할 것입니다. 왜냐면 내가 치료받고 변해서 굳게 서있는 그 곳이 돌아온 아내와 우리 가족이 있어야 할 자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그 치료를 위해 늘 수고하시는 향나무집 관계자들과 여러 유관기관 관계자들, 누구보다 애쓰시는 중독자와 가족여러분 모두에게 좋~은 날이 있기를 두 손 모아서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