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미를 아시나요!!!

                                                                                                        (고운미:아름다운 여인을 가리키는 순우리말)

                                                                                                           카프여성거주시설장 이은숙

간간히 이 땅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이 여성들 또는 여성학자들의 입을 통해 토로되곤 합니다.
희생과 인고의 한 평생을 지낸 어머니들을 생각하면 배부른 소리라는 생각도 들지만 대부분의 딸들은 그런 어머니의 삶에 감사함과 더불어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끼곤 합니다.
더 나아가면 ‘난 엄마처럼 살지는 않을거야’라는 생각도 하지요.
어머니 또한 나이가 들어 갈수록 자신의 삶이 무엇이었나 하는 상실감에 빠지기도 하시지요.
한 가족안에서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어머니도 여성에게 불편한 가치들과 제도, 문화의 영향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건 또 어떤가요? 일명 조두순 사건말입니다.
사건의 과정이야 너무 끔찍해서 다시 입에 올리기도 소름끼치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사회의 가치와 법 제도입니다.
조두순은 범행당시 술에 취해 있었다고 해서 심신미약의 상태로 감형을 받았지요.
그 전에도 이 사람은 술을 먹고 살인도 했었지만 그때도 취해있었고 같은 심신미약의 사유로 2년형을 받았답니다.
남자는 좀 더 남자다움을 누리기 위해 술을 먹고, 취중에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 대해서는 ‘남자답다’라며, ‘남자가 술 먹고 그럴 수도 있지’라며 유난히 관대한 우리사회지요.

그런데 잠깐, 사건의 당사자가 여자라면 어떻게 반응들을 할까요.
여자는 여자다움을 누리기 위해 술을 마시는게 아니라 단지 가슴속의 불울 어찌할 수 없어 술을 먹는 경우가 대부분인 여자의 경우라면요?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사신 어머니들도 사회적 차별을 넘어가긴 힘드셨는데 ‘어디 여자가 술을 먹고...’에 해당되는 알코올중독 여성들은 어떨까요?
심신미약의 상태라고 감형을 받을 수 있을까요? 감형을 받더라도 도덕적인 비난과 매도를 당하지 않을까요?
현재 중독으로 고통받는 많은 여성 환자와 가족들이 환자를 묶거나 가두어 놓을지언정 드러내놓고 밝히기를 꺼리는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요?

또 중독에서 회복을 하는 과정에서의 사회적 지원은 어떨까요?
우선 병원에서도 중독치료를 위한 남성병동은 있지만 여성병동이 따로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요. 입원기간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요. 남성과 같은 병을 앓고 있어도 치료환경은 차별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지요.
또 가족의 지원은 어떨까요? 중독자의 아내는 대체적으로 끝까지 남편의 회복을 지원하지만, 아내가 중독자인 경우 남아있는 남편들은 거의 없지요.

AA모임 역시 전국에 170개가 넘지만 여성모임은 달랑 두세 개입니다.
남성들 모임에 한 두명씩 참여하는 여성들도 할 말을 못하고 모임에서도 기죽고, 잘 나가게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는 2006년 여성거주시설 향나무집을 개소하고
이 땅의 여성알코올릭들을 위한 회복의 삶을 위해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보다 더욱 척박한 회복여성들의 삶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나름 열심히 살았지만 상처투성이의 삶, 그 생애에 가해자처럼 우뚝 서있는 아버지, 남편이었던 남자들.
고통을 피하고자, 살아남고자 선택했던 술 때문에 간신히 살아남기는 했지만 그 누구의 동정도 받지 못하는 버려진 삶,
회복하고 싶어도 손 잡아주는 이 하나 없는 외로운 삶.

어렵게 어렵게 향집에 입소하여 회복의 길을 가고 있지만 이것이 최선인지...

여성회복 선배를 볼 수 없는 현실에서 회복이 안되는 일을 바둥거리며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향집 가족들은 종종 무기력에 빠지기도 했지요.

그래서 우리가 우리를 위로하자고 시작한 것이 고운미숲캠프입니다.

향집 외에서는 잘 만날 수 없는 회복여성들도 만나보고, 여성들도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서로에게 보여주고 힘을 얻고 싶었습니다.
전국의 알코올상담센터와 중독관련 병원, 유관기관들을 연계하여 숨어있는 보석 찾듯이 회복여성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비슷한 느낌들을 갖고 있던 관련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봄캠프를 열게 되었고,
여름과 가을을 진행 했으며 이제 겨울이 남아 있습니다. (이 분들의 애정과 헌신에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또한 녹색문화재단 관계자 여러분과 진심을 다해 프로그램을 운영한 숲해설가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계절마다 3~40명의 여성들이 모여서 숲에서 함께 먹고, 함께 웃고, 함께 울었습니다.

회복을 원하는 여성이 이렇게 많이 숨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회복하고 싶어하는 여자는 나 혼자인가보다’ 라며 생각했던 외로움이 전국에서 모여든 동지들을 만나 “우리”라는 울림으로 힘이 되었습니다.

‘비밀의 크기만큼 아프다’라는 말이 있지요.
내가 감당 못하는 나 혼자만의 비밀과 치부, 식구들에게조차 보이지 못했던 너덜해진 마음들이 고백과 공감과 서로 얼싸 안음으로 기워지고 치유되어 갔습니다.
캠프가 끝나고 헤어질 때마다 잘 이겨내자고, 다음에 꼭 얼굴보자고 서로를 격려하였습니다.
다시 숲에서 만나면, 몸은 떨어져 있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유대감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서로의 존재를 고마워 했습니다.

이렇게 고운미라는 이름으로 만난 여성들은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욱 단단해지는 볏단’처럼
서로를 세우는 회복의 지팡이들이 되어가기를 바랍니다.

중독자에서 회복자로의 지난한 길을 기꺼이 걸어가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참 고운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 아픔으로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상처입은 치유자’의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후배들이 선배 고운미를 보고 희망을 갖고 회복에 용기를 내며 그 길을 따라오게 하는 지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재단과 향나무집이 그 과정을 함께할 것입니다.

 고운미 여러분! 힘내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