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카프소식지 신년호에 실린 원고를 4개의 단락으로 나누어 옮겼습니다


그리고...그녀 이야기

한사람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 말할 수 있을까?
또 그 시간 동안 얼마나 속 깊게 만나야 그 사람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향나무집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정신과 병원에서의 긴 세월을 뒤로하고 향나무집으로 실려와 초점없는 눈으로 앉아있던 그녀는,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골반에 박은 철심이 아프다고 했다.
남편은 바람이 나서 잡히지 않고, 아빠 없는 아이들은 울어대며,
시댁에서는 ‘네 탓이다’ 구박이 심했다.
가슴속에 불덩이가 온몸을 태울 것 같을 때마다 술은 열기를 식혀주고 숨을 쉴 수 있게 해줬다.

손목에 자살시도로 인한 상흔과 담뱃불로 지져진 자국이 있는 또 다른 그녀는
방에 갇혀 남편에게 얻어맞을 때의 두려움이 그림자처럼 덮쳐올때면 비명을 지르며 떤다.
혼자 방에 있는 것을 무서워한다.
술 마시지 말라고 쇠줄에 묶여 있었던 또 다른 그녀는
온동네를 발가벗고 뛰어다니곤 했다.

향나무집에 들어오는 그녀들에게선 죽음이 보인다.
우울증, 식이장애, 자살사고, 조울증 등이 그림자처럼 함께 한다.
몸과 맘이 그리고 인생이 산산조각 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그녀들은 산산조각 났다.
조각나가는 남편을, 아이들을 붙여보려고, 시댁에 붙어보려고,
조각들을 잡다가 손이 베이고 가슴이 벌어졌다.
그곳에 술이 흐르면 아픔을 잊을 수 있었다.

이런 그녀들이 모여 있는 향집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혼재되어있다.
회한, 죄책감, 수치스러움으로 과거를 표현하고
염려, 두려움, 자신없음으로 미래를 계획한다.
오늘은 늘 불안하고 도망치고 싶다.
이런 그녀들은 향나무집에서의 삶을 통해 날마다 깻잎 한 장의 두께만큼씩 성장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자신과 과거를 수용하고, 미래를 신의 영역으로 돌리며,
오늘을 감사로 사는 연습을 한다.
숨쉬듯이... 치열하고, 간절하게...

버거움으로 늘 도망치고 싶은 나는, 숨죽이며 다시 치료공동체의 믿음과 긍정의 철학으로 발을 깊이 담근다.

맺는 말

카프여성거주시설향나무집의 운영모델로 치료공동체를 도입하면서 치료공동체가 우리나라의 문화에 적합할 것인가, 특히 여성의 정서에 적절할 것인가는 끊임없는 고민거리였다.
이러한 어려움과 저항감을 줄이기 위해 처음에는 최소의 도구들을 유연한 형태로 진행하였으며 도구의 활용과 목적 등에 대해 이해가 되면 다음 강도의 도구를 도입하였다.

거주기간이 길어지고 도구의 효과들을 삶에서 느낄수록 사고와 행동의 변화는 촉진되었다.
이는 치료공동체의 목표인 삶의 전체적인 변화와 회복을 위한 도구들을
향나무집에서 삶 그 자체로 활용하고 살아낸 결과이다.
또한 각 도구들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심, 사랑, 배려의 마음을 밑바탕에 갖고 있어
도구를 활용하는 사람들의 성품을 새롭게 만들어준다.
이러한 치료공동체의 치유적인 힘은 자신과 타인을 정직하게 직면하게 하며, 행동을 교정한다. 장기거주자의 경우 습관의 변화로 이어져 회복에 좀 더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세월이 더 흐르고 지금처럼 향나무집을 수료하고
직장인으로, 가족으로 돌아가는 여성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회복자를 보게 될 것이다.
중독자라는 말처럼 회복자라는 말이 낮설지 않아질 것이다.
그리고 회복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와 존중이 천천히 자라날 것이다.

이날이 올 때까지 회복여성들은 더 많이 울 것이며,
더 많이 일어설 것이고,
그 곁에 향나무집이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