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서

 
 숑숑님
 

23살 치료공동체에 들다

쌀쌀한 봄날, 나는 결국 향나무집 치료공동체에 입소하게 되었다. 23살 내 또래는 아무도 없었다. 그동안 혼자서 제멋대로 살아온 나에게 모르는 사람들과 살을 부대끼고 사는 것은 너무나 큰 스트레스였다. 술에 취에 눈을 뜨는 시간이 아침이었는데, 규칙적으로 생활한다는 것 역시 내겐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처음에는 두세달 지내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니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석달만 참자는 마음으로 생활했다.

처음 한 달은 사람들이 싫었다. 시설 규칙도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다. 교만함에 내가 제일 잘나고 똑똑한 사람인 줄 알았고 나는 여기 있는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마지못해서 사람들과 생활을 했다. 누군가 내 일에 참견하고 간섭하는 것이 너무 싫었고 모든 것을 감시받는 기분이었다. 프로그램 마다 규칙이 있었고 나를 옭아매는 것만 같아 짜증이 났다. 누군가와 시비가 붙는다면 이곳을 뒤집어엎고 뛰쳐나올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동료와 크게 싸웠다. 집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갈 곳이 없는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의 규칙을 따라야 했다. 같이 싸움을 했던 동료를 칭찬해야했고 매일 꼬옥 안아 주어야했다. 또한 직면시간을 통해서 듣기 싫은 소리와 나의 잘못들에 대해서 매일 들어야 했다. 처음에는 그런 시간이 괴로웠다. 하지만 그때부터 나에게 알 수 없는 변화가 조금씩 일어났다.

오기로 시작된 감사일기

3개월 후에 퇴소하겠다던 내 마음에 오기가 생겼던 것이다. 내 수준과 안 맞는 사람들도 몇 달씩 버티는데 나라고 왜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1년을 버티지 못한다면 사회에 나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사회복지사 선생님에게 감사 일기를 쓰며 그로 인해 삶이 감사해졌다는 말을 들었다.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은 내 수준에 미치진 못했지만 사회복지사 선생님은 어느 정도 나랑 수준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감사할 일이 없어서 억지로 만들어야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쓰다 보니 나중에는 감사할 일들이 넘쳐났다. 억지로 만들어낸 감사가 아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감사함들은 특별하고 대단한 것들이 아니였다 내가 좋아하는 고기반찬을 먹을 수 있는 것, 아직까지 술을 먹지 않고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등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나를 사랑하자 죄책감이 사라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모든 프로그램들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입은 하기 싫다고 투덜거려도 막상 하면 제일 즐겁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보다 수준이하라고 느끼던 사람들이 정말 가족같이 느껴졌다. 같이 싸움을 했던 동료와도 많이 친해져 서로 힘든 일도 터놓고 얘기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프로그램 하나하나에 너무 감사했다. 매주 멀리까지 오셔서 메시지 전해주는 단주 선배님, 심리 치유를 받을 수 있게 해주신 선생님, 12단계를 전하러 오시는 선생님 등 우리의 회복을 돕고자 오시는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직면시간, 자조모임, AA모임 등 향나무집에서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나를 변화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매시간이 즐거웠던 건 아니지만 감정적으로 힘들때면 언제나 사무실 방문을 두드렸다.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과 무엇이 힘든지 들어주는 사회복지사 선생님들 역시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치료공동체에서 나를 돌아보며 나 스스로를 많이 사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알코올 중독에 대해서 공부를 하다보니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도 조금씩 사라졌다.

재발하는 사람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과 술 마신 후 내 모습이기에 거울을 보는 기분이었다. “저게 곧 술을 마신 내 모습이구나, 나도 술을 먹으면 저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극역시 내가 회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행복을 찾아서

지금은 향나무 집을 졸업한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다행히 아직 술을 먹지 않고 꿈을 향해 노력하고 있다.

내가 여러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께 도움을 받아서 단주를 할 수 있었듯이 나도 사회복지사가 되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는 것이 나의 꿈이다. 늦긴 했지만 사이버대학을 다니며 공부하고 있고, 멋진 바리스타가 되어서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재활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어 자격증도 땄고 열심히 배우고 있다. 향나무집에서 화상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후원을 연결해주어 화상치료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재수술 일정이 남아있지만 술과 관련된 몸의 상처는 아물어가는 듯 하다.

지금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내가 중독자임을 매번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시 술을 마신다면 지금의 생활이 완전히 무너져버린다는 것이다. 가끔은 일하는 것도 힘들고 공부하는 것도 지치지만 이마저도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다. 내 잃어버린 20대 초반의 삶에 비하면 지금의 고통은 아주 잠깐이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그동안 술을 먹었던 이유도 당시의 고통을 잊고 행복해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술이 주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닌 순간의 고통을 잊기 위함이고 그 대가가 얼마나 처절하고 비참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내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 내가 현재의 내 삶에 만족하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그것이 아직까지 단주를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내 꿈을 실천하며 더 나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게 나의 가장 큰 목표이자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