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제가 고 3때, 2008년 9월 간경화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약 5~6년 전부터 알코올 중독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셨고, 치료를 거부하신 채 술로 남은 생을 살아가셨습니다. 부모님은 이미 초등학교 6학년때 법적으로 이혼을 하셨고, 아버지는 직업특성상 지방을 전전하셨었습니다. 저를 보호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알코올 중독자인 어머니, 그리고 두 살 터울인 언니가 전부였습니다. 중학교때 처음 맛보았던 술은 그런 저의 환경들을 잊게 해주는 마법같은 묘약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저는 반항이 심해졌습니다. 고 1때 집을 나가서 학교 수업도 빼먹고, 가족과는 거의 단절된 상태였습니다. 고 3이 되었을 때는 수험생이 아닌 문제아가 되었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용돈벌이로 시작한 아르바이트도 술을 마시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렸습니다. 당연히 출석부는 엉망이었고, 그나마 담임선생님께서 결석이 아닌 조퇴나 지각으로 처리를 해주셨습니다.

고 3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어머니가 담임선생님께 사정을 해주셔서 통신사 사무직이 아닌 서비스직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갔던 집도 다시 들어가 가족들과의 사이가 원만해져갈 즈음이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하여 유니폼을 갈아입으려던 찰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저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학창시절 내게 있어 어머니라는 존재는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는, 귀찮은 존재였습니다. 언제나 술을 마시고 이어지는 신세한탄과 초라하게 문 앞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기 싫었습니다. 어머니의 술 취한 모습은 꼭 나 때문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죄책감이 너무나 컸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나의 음주문제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일이 끝나고 마시기 시작한 술은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습니다. 직장에 지각하는 일이 잦아졌고, 처음에 열심히 하겠다는 열정과 포부는 사라지고 일처리 조차 힘들어졌습니다. 물론 직장 상사들은 어린 내게 처음에는 주의를 주었지만 그 누구의 말도 제겐 들리지 않았습니다. 잦은 지각으로 혼나는 것도 싫었고, 일하는 것도 싫었던 저는 충동적으로 6개월 만에 직장을 그만 두었습니다. 그 다음직장은 3개월, 한 달, 4개월, 3개월. 술로 인해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지 못했고, 1년 반 동안 여기저기 옮겨다녔습니다.

21살 겨울날, 스스로 술문제가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몇일만 술을 안먹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단주 첫날 나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누군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습니다. 좀비들이 나와 하루 종일 도망다니는 불쾌한 꿈도 꾸었습니다. 둘째날은 있지도 않던 강아지와 고양이가 내 몸을 훑고 지나갔고, 집안의 가구들과 벽지들이 나를 보고 비웃었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내게 꺼내달라며 말을 걸었고, 새들과 동물들이 그림자처럼 비춰보였습니다. 셋째날이 되자 이번엔 온몸에 구슬들이 굴러 다니고, 동물들이 기어 다니는 느낌이 났습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으면 그 위로 동물들이 쿵쿵 뛰어다녔고, 동물의 왕국인 사파리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입원을 했고 3개월이 지나자 혼자 할 수 있을거란 생각에 아버지께 졸라 퇴원했습니다.

한 달정도는 잘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시 술을 마시면 취할 때 까지 마셔야 했고, 집에 안들어가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달라진게 없었습니다. 역시나 얼마 가지 않고 3개월만에 다시 병원을 내발로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병원에서 구직을 핑계로 밖에 나가 몰래 술을 먹고 들어오곤 했습니다. 그러다 병원에서 발각 되었고, 더 이상 병원을 속일 수 없었습니다. 결국 아버지를 졸라서 4개월만에 퇴원을 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에 있는 현장에서 경리직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조절 음주는 지각도 안하고,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아버지 몰래 차에서 술을 훔쳐마시고, 잔돈이라도 생기면 몰래 술을 사다가 마셨습니다. 그러던 1월에 아버지가 숙소를 비운 사이, 저는 계속해서 술을 마시는 것이 괴로웠고, 또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술먹고 취한 상태에서 약 20일치를 먹었고 저는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열흘쯤 지나,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을 때 저는 꿈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누군가 나를 죽일것 같다는 불안감과 하늘을 날고 있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들이 너무나 현실처럼 느껴졌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왼쪽에는 전기장판으로 인해 심할 정도의 화상을 입었습니다. 치료 후 집으로 돌아왔을때, 다시 회복해 나갈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한달도 채 가지 못해서 병원에 갈 돈으로 공중 화장실에서 몰래 술을 마셨고, 만취가 돼서 집에 돌아갔습니다. 그러다 결국 향집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은 술만 끊으면 될 거라는 생각과 나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 할 거라는 자만심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내가 제일 잘난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나 완벽해야했고, 잘해야 됐으며 타인의 도움따위는 필요없었습니다. 세상은 나 혼자만 잘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왔었습니다.

그런 자만심과 교만심 때문이었을까요? 처음에는 향집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새벽 6시에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것조차도 힘들었습니다. 쓰린 배와 숙취로 인한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해가 중천에 떠서야 겨우겨우 눈을 뜨던 습관들을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향집에서의 8개월을 지내는 동안 6시면 자동적으로 눈이 떠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중독자가 그렇듯 술이 밥이었습니다. 하루 삼시세끼 술은 챙겨먹어도 밥은 먹지 않았습니다. 제겐 술이 밥이었습니다. 향집에 온 후 하루 삼시세끼 꼬박꼬박 밥도 챙겨 먹고, 내 건강을 챙기고 내 몸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제멋대로 행동하던 습관들도 작은 규칙들을 지켜나가면서 타인을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세상은 내 위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함께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2단계 수업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러 오시는 두 회복자 선생님들로 부터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내가 중독자임을 시인하게 되면서 느꼈던 좌절감과 죄책감, 수치스러움들을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중독자이자 회복자이신 두 분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고, 또 제 마음속에 죄책감과 짐처럼 느끼고 있던 것들을 덜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두 분처럼 우리도 회복해 갈 수 있다는 살아계신 증인이시기에 희망도 생길 수 있었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조차 끊기 힘들었던 술을 8개월동안 마시지 않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항상 부정적이고, 하기 싫고, 불만만 많던 제가 이제는 ‘할 수 있다.’ 라는 자신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정말 많은 것들이 향집에서 생활하면서 바뀔 수 있었습니다.

혼자서 회복의 길을 걷고 있다면 지금까지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술에 대한 갈망과 조절할 수 없는 감정들 그리고 나의 성격적 결함들까지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3개월도 못가서 다시 술을 마셨을 것이고 지금도 술에 취해있었을것입니다. 제가 교만하고 자만할 때 제게 직면해주고, 또 잘못된 것을 비춰주는 향집 가족들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또 힘들때는 나를 지지해주고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향집식구들과 스탭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물론 앞으로 제가 살아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난 할 것입니다. 부족한 부분도 고쳐야 할 부분도 많이있을 것입니다. 지쳐 쓰러지기도 하고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변화할 수 있는 사람이고, 회복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AA의 일념처럼 오늘 하루 술을 먹지 않는다는 생각들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입니다. 제가 10년? 5년? 1년? 단주하겠다고 미래를 장담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저 저는 오늘 하루 술을 먹지 않을 것이고, 오늘 하루를 위해 살아가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족한 저의 경험담을 들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이것으로 저의 경험담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