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나무집 10주년 축하글

먼저 향나무집의 귀한 자리에 졸업생 가족의 신분으로 여러분께 인사드리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제 가정의 지난 시간에 대한 나눔이 향나무집 가족들과 오늘 오신 분들께 오늘 하루도 이렇게 중독과 치열하게 사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구나 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올해 저희 집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저와 아내에게는 이 입학이 특별한 의미입니다. 둘째가 생후 8개월 되었을 때, 아내는 출산후 우울증과 소아우울증의 재발로 두 아이의 양육은 물론 가정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 섭식장애와 쇼핑중독이 겹쳐 입원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었습니다. 기대했던 아내의 변화는 없었고, 저 역시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가정이 깨어질 것이라는 위기감, 아이 둘에 대한 부담, 두려움 등이 엄습했습니다. 아내의 안일한 인식은 제가 아내에게 주던 의존섞인 지지였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숙주노릇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변화가 없을 시 이혼하겠다고 통보했지요. 물론 그 말이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해도 더 이상 아내 없는 가정에 대한 두려움으로 중독자의 다른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란 마음이 고스란히 아내에게 전달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내가 향나무집에 입소한 후 가족 모두 각자의 환경 속에서 벼텨내는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향나무집과 통화하면서 아이들 만나는 시점을 조율했으며, 성급하지않아야함을 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2년 가까운 시간동안 엄마와 가져야 할 애착의 부재가, 아이들의 인생에 또 다른 중독의 짐을 줄까봐 많이 울었습니다. 아내 역시 어린 시절이 그러했으니까요. 중독과 우울증에 대해 아는 바 없던 저는 공부를 해야만 했습니다. 아내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중독자 가정의 아이들의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제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몰랐습니다. 향나무집에서의 가이드는 소중한 방향키가 되어 주었습니다. 아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섭식중독 치료기관을 찾기 어려웠는데, 다행히 아내에게 필요한 훈련을 할 수 있는 곳에 입소했더군요.

이후 저는 재결합하기로 결정했고 퇴소 이후 아내가 현실에서의 스트레스로 또 다시 시작되는 중독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끊임없이 감시하고, 격려하며, 참아야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힘들 때마다 아내는 향나무집으로 달려가더군요. 다녀온 다음엔 훨씬 안정적이고, 저에게 사과도 하고 ^^ 다시 여러 번 힘을 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중엔 조금 부럽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디 가서 풀 곳도 없어 쌓이고 쌓이는데 아내는 안정적인 스트레스 관리를 받고 있구나.. 하면서요. 물론 압니다. 저보다 아내가 훨씬 힘들다는 것을요.

얼마 전부터 저에게 뭔가 파도 같은 정서적 어려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내는 회복되고 노력하고 있고, 아이들도 좋아졌는데, 아내가 원망스럽고, 쉽게 화가 났습니다. 마음에는 감사보다 울퉁불퉁한 감정의 덩어리들이 가슴 이곳저곳을 훑고 지나가면 그렇게 속이 아프고 공허할 수가 없습니다. 아내가 향나무집에서 부터 지속적으로 받았던 심상치료를 저도 받기도 했고, 운동도 해보고, 여행도 다녀보았습니다. 최근에도 향나무집 원장님을 찾아뵙고 상담하면서 공감을 받고 눈물 흘렸던 기억도 나네요.

여전히 저희 가정은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울퉁불퉁 합니다.

중독자 가정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으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는 순간 중독의 어두움에 길을 잃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중독의 어려움 가운데 있으며, 저의 가정도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다만 함께 하는 분들과 같이 가기에 그 길이 조금은 쉽고, 조금은 덜 외롭습니다.

향나무집이 있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고단한 삶의 짐을 함께 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중독의 어려움에서 자신을 직면하며 싸워가시는 분들을 응원합니다

향나무집의 10주년 개소식을 축하드리며, 저도 그 공동체 속에 포함되어 이 글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2016. 2. 중독자를 아내로 둔 남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