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나무집 졸업자 선생님이

좋은세상 나눔이 생활수기 공모전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수기 중 뒷부분만 발췌해 올렸습니다.


스물한살 알코올중독자의 희망노래

향집에서 시작했던 것이 2012년 4월 12일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곳에서 생활한 1년이라는 시간을 빼고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건강한 삶이 새로 시작되었다.

현재의 내 삶은 술을 마셨을 때 느끼던 몽롱한 정신보다는 훨씬 더 행복하다. 가끔은 또래보다 늦게 시작해서 뒤쳐진 것 같은 불안한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술을 마실 때의 고통보다는 덜하다. 현재의 내 삶이 행복해지니 내게도 작은 꿈이 하나 생겼다. 내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회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듯이 나도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나의 꿈이다. 그래서 향집을 퇴소하자마자 시작한 사회복지사 공부도 비록 사이버대학교이지만 그래도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수업도 열심히 듣고 있다. 물론 그동안 술로 인해 망가진 뇌세포로 어려움도 많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바리스타자격증을 취득하여 현재는 바리스타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먼 미래에 실현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카페를 차리고 위기청소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그래서 열심히 일을 하면서 커피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있다.

사실 향집에 있을 때 나는 집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종교를 믿진 않지만 사회복지사선생님 한분이 ‘회복만 하면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얘기를 많이 하시곤 했다. 당시 그 얘기를 들을 때 만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당장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어디서 집이 생기고 한다는 건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술을 끊은 지 1년, 퇴소일이 다가오자 기적 같은 일들이 생겼다. 정말 모든 것이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고모의 도움으로 집도 구하게 되었다. 집이 생긴 후 일자리도 생기고 하고 싶은 일도 생겼다. 향집의 후원 연계로 뱀처럼 내 몸을 휘감고 있던 화상흉터를 성형수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그리고 아주 천천히, 내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게 되었다.

향집 프로그램시간에 작성한 버킷리스트가 있었다. 처음에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었는데 정말 신기하게 하나씩 이루게 되었다. 사실 술 마실 때에는 술 때문에 욱해서 직장도 그만둬 버리는 바람에 한 직장에서 3개월 이상 버티지 못했었다. 하지만 술을 끊고 나서 한 직장에서 1년 동안 일을 했고, 마무리도 좋게 끝을 맺었다. 또한 적금도 술 먹기에 급급해서 3개월 만에 해지해버렸지만 술을 끊고 1년 동안 적금하기라는 목표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스쿠터로 제주도 일주하기와 해외여행하기도 나의 목표였다. 여행을 하고 활동적인 것을 좋아했지만 돈도 없었다. 술을 마실 때는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향집을 졸업한 다음해 나는 스쿠터를 타고 제주도를 일주하였다. 또 이번에는 홍콩으로 여행을 다녀 올 수 있게 되었다. 술을 마시던 예전 같으면 나와는 먼 이야기이고, 상상속의 그런 모습들이었는데 조금씩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겠지만 이런 변화들이 스스로 너무 행복하고 만족스럽다.

사실 내가 술을 좋아했던 것도 있지만, 술을 끊는데 있어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사회생활이었다. 하지만 술을 마시지 않고도 직장에서 아무 문제도 없고 사람들을 만나는데도 아무 문제도 없었다. 오히려 관계는 더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술을 마시던 시절에는 주변에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생겼는데 내가 술을 끊으니 주변에도 술을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온전한 정신으로 영화도 보고 연극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도 떠나는 정말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다음날 얼굴 붉히며 무슨 실수는 하지 않았을까 조마조마하며 눈치를 봐야할 일도 없어졌다. 어쩔 수 없는 술자리에 가도 나는 더 이상 두렵거나 무섭지 않다. 내가 상대방의 술잔을 거부해도 그 관계가 깨지지 않는다. 술을 거부했을 때 그 누구도 내게 술을 강요하지 않는다. 술을 끊음으로서 오히려 안전한 사회생활이 가능해졌다.

술을 끊는다고 마냥 행복한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는 노력하고 집중하고 주의해야만 유지 될 수 있다. 가끔은 너무 힘이 들 때 그 쌉싸름하고 달콤한 한잔이 생각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향집에서 보낸 1년이라는 시간의 힘은 생각보다 더 강한 힘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다른 활동적인 취미 활동들을 하면서 해소를 하고 있다. 야구장에 가서 소리도 지르고 공연장에 가서 미친 듯이 뛰고 소리 지르며 놀기도 하고 또 보드를 타거나 웨이크보드를 타면서 건전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회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함을 AA라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병원에서의 치료라고도 하는데 나는 회복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순간이 얼마나 행복하냐에 있는 거 같다. 술을 마시고 있지 않은 이 상황이 행복하지 않다면 분명 다시 술을 찾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면 굳이 술을 마실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 순간을 내가 중독자임을 인지하며 살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나도 가끔은 내가 중독자가 아닐 거라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건 술을 마시면 나는 이 행복을, 이 순간을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나도 내가 언제까지 단주를 유지하면서 이 생활을 유지할지는 장담하지는 못한다. 분명 중간에 재발할 수도 있고 지금보다 더 큰 좌절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떤 순간이 와도 술을 마실 때만큼의 고통은 없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다시 회복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