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와 대한보건협회에서 주최한 제7회 우수절주사업 및 알코올중독극복사례 경진대회 최우수상 수상작으로  향집 졸업생 숑숑님의 글입니다.  Part 1, 2로 나누어 실렸습니다.



행복을 찾아서

숑숑

2012년 4월 12일 제법 쌀쌀한 날씨였다. 건너 건너 소개로 알게 된 향나무집 치료공동체에 입소하기로 한 날이었다. 이제 당분간 술을 못 마신다는 절망감에 전날 몰래 한 병 사다 마신 술이 덜 깨서 알딸딸한 상태였다.

술과 가출

처음 술을 배운 건 중학교 수련회였다. 곧 전학을 가야했고 친구들과 헤어지기 서운하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 기분이 좋아졌다. 씁쓸한 맛은 있었지만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해방감을 느꼈다. 술 마시는 중 친구엄마에게 크게 혼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즐거웠다. 술은 나를 너무나 즐겁게 해주었다. 친구와 헤어져야한다는 슬픔도 걱정도 없었다. 그게 술에 대한 내 첫 기억이다.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이 되면서다. 일찍이 부모님께서 이혼을 해 어머니, 아버지와 번갈아 살며 전학도, 이사도 많이 다녔다. 게다가 늘 술에 취해 아버지를 원망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내겐 너무 끔찍했다. 늘어가는 잔소리와 나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정말 집이 너무너무 싫었다. 왜 내게만 이런 불행이 생기는지... .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순 없는지 어머니를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내가 생각한 최선책은 ‘가출’이었다. 방학때면 친구 집에서 지내다, 등하교마저 친구집에서 하게 되었다. 가끔 학교도 거르고 술을 마시며 내 맘대로 살았다.

알코올중독자 우리 어머니와 죄책감

고등학교 3학년,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면서 술문제가 심각해졌다. 돌아간 집은 내게 끔찍한 곳이었다. 언니와의 관계도 완전히 틀어져버렸고, 어머니는 여전히 쌀통에 숨기고 싱크대에 숨기며 술을 마셨다. 얼마나 마셨는지 하교 후 집에 돌아오면 엄마의 눈은 풀려있고 우리에게 상처 주는 말들을 하곤 했다. 그렇게 점점 말라가는 어머니 모습이 너무나 보기 싫고 괴로웠다. 어머니 말대로 “나”라는 존재가 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언니만큼 똑똑하지 못하다는 열등감이 나를 힘들게 했다.

친구의 소개로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를 시작하며 내게 처음으로 큰돈이 생기기 시작했다. 거짓말하고 눈치 보며 어머니께 몇 천 원씩 받아쓰다가 한 번에 몇 십만 원의 큰돈이 생기니 세상이 내 것이 된 것 같은 큰 착각에 빠졌다.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집에 가기 싫어 친구들에게 술을 사주며 밤새 함께 어울려 놀았다. 마냥 즐거웠다.

학교에서 추천해준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한달이 채 되지 않아 어머니는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막 어머니와의 사이가 다시 좋아지려는 때라 죄책감이 너무나 컸다. 어머니는 언제나 “너 때문에”를 입에 달고 살았고, 때로는 나가라는 말까지 하셨다. 어머니께 잘못했던 것들만 떠올랐고 정말 나 때문에 돌아가신 것만 같았다. 내가 그때 방황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더라면.. 어머니께 조금 더 잘해드렸더라면 하는 생각들이 너무 괴로웠고 어머니에 대한 나의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한 괴로움 때문에 술을 먹는 날이 더 늘어갔고, 20살이 되면서부터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 죄책감이 사라지고 즐거웠다.

그렇게 끔직해하던 어머니의 모습으로

시간이 갈수록 필름은 끊겼고, 어디인지도 모를 곳에서 술에 깨곤 했다. 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친구들도 나와 함께 술 먹는 걸 꺼려하는 눈치였다. 그나마 내세울 거라곤 알바해서 번 돈 몇 푼이었다. 술을 마시며 친해졌던 친구들이 술을 마실수록 점점 멀어졌다. 차라리 혼자 마시는 게 나았다. 퇴근길에 어김없이 소주 한 병을 사들고 집에 와서 혼자 술을 마셨다. 술을 사러간 마트에서 괜히 시비를 걸기도 했다. 세상에 내편은 없고 나는 혼자였다. 술을 아무리 마셔도 고독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밤에만 마시던 술이 아침까지 이어졌고, 직장은 매일 지각하기 일쑤였다. 직장에서 누군가 한소리 하면 그만두겠다고 뛰쳐나왔고 그렇게 이곳저곳 옮겨 다녔다. 결국 낮에도 몰래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렇게 끔찍해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내가 그대로 하고 있었다. 절망적이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에 죽을 때까지 술을 마셨지만 죽지 않을 만큼 아프기만 했다. 아침에 눈뜨면 침대 옆에 술병이 있었고 한 모금을 마셔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인터넷이나 하면서 뒹굴 거리고 술을 마시다 잠이 들었다. 사실 어떻게 잠들었는지 오늘이 며칠인지 알 수 없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2~3일이 지나있었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인터넷 자가검진으론 나는 심각한 알코올중독이었다. 이미 몇 번 검사를 해봤고 그 때마다 중독이라고 나왔지만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술을 좋아하는 것뿐이라고.. 알코올 중독은 집 없이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금단증상과 정신병원

그렇게 21살까지 술만 마시다 어느 날 문득 지긋지긋한 술을 끊고 싶었다. 마음먹고 술을 끊었다. 하루가 지나자 내 몸에는 이상한 변화들이 찾아왔다. 환각, 환시, 그리고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온몸에는 구슬이 굴러다니는 느낌이 들었고 고양이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들리지 않던 소리까지 들려서 너무나 괴로웠다. 그때 나는 정말 반쯤 미쳐있었다. 그렇게 이틀을 버티다 결국 언니의 도움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 병원에 가서도 고통은 멈추지 않았고 진통제를 놓은 후 쓰러졌다.

며칠이나 지나 눈을 떠보니 굳게 닫힌 병원 철문이 보였다. 여긴 어머니가 술 때문에 입원했던 정신병원이구나 깨달았다. 6개월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퇴원을 했지만, 퇴원하는 날부터 다시 술을 마셨다. 더 은밀하게 술을 마셨고, 교만했던 나는 내가 완벽 범죄를 이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조절하면 생활하는데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결국 같은 상황이 오고 다시 입원했다. 병원에서는 성실한 환자로 지내며 외출나가서는 몰래 술을 먹고 다시 119에 실려 왔다. 그 병원에서는 더 이상 술을 먹을 수 없어 선택한 것이 아버지였다.

자살시도와 화상자국

아버지는 언제나 우리를 돌봐주지 못했다는 괴로움과 미안함이 있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용했다. 내가 나가서 아버지말씀 잘 듣고 또 술도 지금처럼 안 먹겠다고 말이다.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병원에 있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결국 나를 퇴원시켰고 함께 살게 되었다. 처음엔 아버지와 함께 먹었지만 아버지가 지정해주는 양은 늘 아쉬웠다. 몰래 술을 빼다먹고 빈병들에 남아있는 술들을 모아 마시곤 했다. 심부름하다 몰래 모아둔 돈과 식당에서 한 병 추가해서 계산했던 술들마저 모두 바닥이 났다. 이렇게 살기는 싫었다. 하지만 술을 먹지 않는다면 찾아오는 그 공포감이 더 무서웠고,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병원에서 받아온 정신과약 한 달 치와 소주 한 병을 마시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오랫동안 꿈을 꾸었다. 꿈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죽였다. 내가 죽으면 누군가 시간을 되돌려 죽기 전 상황으로 만들어놨고, 나는 그렇게 꿈속에서 고통스럽게 수도 없이 죽었다. 며칠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고 나서야 조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몸에는 큰 화상자국이 이곳저곳 남아있었다. 내가 그날 술 먹고 전기장판에 하루 반나절을 누워있어 입은 화상이라고 한다. 퇴원을 하고도 나는 몰래 술을 마셨고, 결국 술 앞에 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